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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 코트의 봄을 찾아 유튜브로 간 아재들

이달 초, 경기 안양시 안양고 체육관. 우지원이 던진 3점 슛이 깨끗하게 림을 갈랐다. 명 슈터로 이름을 날렸던 1990년대 농구대잔치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팀의 막내 하승진은 “역시 지원이 형, 슛 감각 여전하네요”라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하승진은 역대 국내 최장신(2m21㎝) 선수로, 미국 프로농구(NBA)를 경험한 유일한 한국 선수다. 둘은 나란히 유튜브 프로젝트팀 ‘한국프로농구(KBL) 레전드’에서 뛴다. 우지원이 47세, 하승진은 35세다. KBL 레전드는 은퇴한 전 농구 국가대표 6명이 주축이다. 우지원과 하승진 외에도 ‘총알 탄 사나이’ 신기성(45), ‘매직 핸드’ 김승현(42), 도쿄올림픽 3대3 농구 국가대표 이승준(42)과 이동준(40) 등이 코트를 누빈다. 우지원은 1996 애틀란타 올림픽 국가대표, 특급 가드 신기성·김승현은 2002 아시안게임 금메달 주역, 빅맨 이승준·하승진은 2010 아시안게임 준우승 멤버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특급 스타들이 다시 뭉친 건 농구의 인기를 다시 한번 끌어올려 보자는 뜻에서다. 평균 나이 41.8세. 하지만 ‘아재’라고 우습게 보면 큰코다친다. 이들은 첫 경기인 미군 오산기지 농구팀과 대결에서 63-51로 완승했다. 기운이 펄펄 넘치는 20대 미군 장병들을 여유 있게 제압하는 경기 영상은 조회 수 100만건을 훌쩍 넘길 만큼 팬들의 높은 관심을 모았다. KBL 레전드는 미군 팀을 시작으로, 전국체전에서 8강에 오른 전국의 고교 팀을 찾아가 차례로 맞붙는다. 우지원은 “2010년에 은퇴했으니까 거의 10년 만에 5대5 경기를 한 거다. 그래도 팀원들이 대표팀과 프로팀에서 손발을 맞춰봤던 선수들이라 호흡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미군들이 처음에는 우리가 40대라는 얘기를 듣고 "더블 스코어로 이긴다”고 호언장담했다. 이 나이에도 승부욕이 발동해 이를 악물고 뛰었다. 뛰다 보니 현역 시절 생각이 나 설렜다”고 말했다. 여전히 탄탄한 몸과 체력을 유지하는 비결을 묻자 우지원은 “은퇴했다고 모든 것을 내려놓지는 않았다. 꾸준히 웨이트 트레이닝과 식단 관리를 했다. 덕분에 체력이 중요한 풀코트 경기를 소화한다. 떨어진 슛 감각은 어쩔 수 없어 아쉽다”고 대답했다. 이동준은 “미군 팀은 국내 프로팀이 연습경기를 할 만큼 실력이 좋다. 프로팀만큼 조직력이 좋지는 않지만, 대학 때까지 농구선수로 활약한 선수도 있고 개인 기량이 탁월하다. 신체 능력이 뛰어난 상대를 40대 선수들이 노련하게 상대하는 모습이 (유튜브에서) 팬들 관심을 끈 것 같다”고 말했다. 관리를 잘해도 세월은 속일 수 없다. 가장 아쉬운 경기력을 선보인 팀원을 묻자, 일제히 신기성을 가리켰다. 신기성은 억울한 표정으로 “최근까지 지도자로 지내다 보니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총알 탄 사나이’라는 별명이 쑥스러울 정도였다. 지원이 형이 너무 잘해서 놀랐다. 뒤늦게 운동을 시작해서 지금은 많이 올라왔다”고 해명했다. 신기성은 지난 시즌까지 여자 프로농구 인천 신한은행 감독을 지냈다. 하승진은 “(감독 출신이라 그런지) 기성이 형은 경기는 안 하고 잔소리만 한다. 지금도 자기가 감독인 줄 안다”고 핀잔을 줬다. 신기성은 “그건 어쩔 수 없는 직업병”이라고 맞받았다. 유튜브 스타로 새롭게 주목받는 선수는 하승진이다. 현역 시절 그는 자유투 성공률이 낮은 것으로 ‘악명’을 날렸다. 그런데 KBL 레전드 경기에서는 자유투를 던지는 족족 성공시키고 있다. 신기성이 “은퇴하고 나서 어떻게 자유투를 더 잘 던지냐”고 묻자, 하승진은 “과거에는 관중이나 경기 상황이 심리적 영향을 미쳤는데, 지금은 편안하게 던진다”고 설명한 뒤 “사실은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최근 경기에서도) 일부러 실력을 숨겼다”고 으스댔다. KBL 레전드는 요즘 유튜브에 푹 빠졌다. 하승진은 “유튜브는 실시간으로 시청자와 소통하다 보니, ‘이보다 팬들과 더 친숙하게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하승진은 현재 개인 유튜브 채널도 운영 중이며, 구독자는 약 15만 명이다. 하승진에게 “혹시 시합 중에 상대에게 블록을 당할까 걱정되지 않냐”고 묻자, “사람들은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에서 다윗을 응원한다. 내가 블록 당하면 오히려 우리 방송에 좋은 일이다. 이런 말을 하는 거 보니 나도 유튜버가 다 된 것 같다”며 웃었다. 신기성은 “방송을 하면서 동료끼리 더 끈끈해졌고, 방송하는 게 즐겁다. 요즘 방송 대세인 허재 형님이 밝아진 이유를 알겠다”고 말했다. 김승현은 소형카메라를 머리띠에 달고 뛴다. 다양한 관점의 영상을 만들기 위해서다. 김승현은 “멋진 패스도 중요하지만, 가드가 어떻게 동료를 살피고 어떤 상황에서 패스를 뿌리는지 팬들에게 다각도의 영상을 보여주고 싶어서 불편하지만 달고 뛴다”고 말했다. 우지원은 “유튜브가 대세인 것 같다. 중고생 등 어린 학생들도 우리를 알아본다.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는 책임감도 느낀다. 코트에 ‘농구의 봄’이 다시 올 수 있도록 힘을 보태겠다”고 다짐했다. 피주영 기자 akapj@joongang.co.kr 2020.02.12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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